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이 영국인들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자신의 별명 1차대전 전투기

프랑스, 두에(Douai) 비행장에 주기되어있는 제 11 전투 비행대대의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들.
앞에서 두 번째에 있는 전투기가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의 기체이며, 그 뒤에 있는 기체는 쿠르트 볼프의 기체입니다.

... (전략) ...

리히트호펜은 또한 신형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를 최초로 조종했습니다. 이 신형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더 강력해진 메르세데스 엔진과, 프랑스군의 뉴포르 17 전투기에서 사용된, 일엽반기(sesquiplane) 주익 구조를 본따 만든 'V자형 지지대'가 도입됐습니다. 윗 날개에 비해서 아래 날개의 크기가 작은 이 일엽반기 구조는 조종사들의 하방 시야를 향상시키려는 의도로 제작됐습니다. 완벽한 자신감의 표출로, 리히트호펜은 자신의 기체 전체를 붉은색으로 도색했으며, 이는 자신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드러내서 적들에게 공포의 상징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붉은 남작의 전설이 시작될 징조였습니다.

리히트호펜이 이끄는 새로운 전투 비행대대(Jasta)가 성공적으로 활약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1월 23일 리히트호펜은 부하들을 이끌고 사진 정찰비행 임무를 지원하는 40 비행대대의 F.E.8 복엽기 8대를 공격했습니다. F.E.8 복엽기는 전반적으로 D.H.2 복엽기와 비슷한 특징을 지닌 기종으로, 전방 사격이 가능한 루이스 기관총 한 정과 최대 90 마일(144.8 km/h)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단좌식 푸셔형(pusher) 항공기였습니다. 난전이 이어지면서 리히트호펜은 존 헤이(John Hay) 중위가 조종하는 F.E.8 복엽기 쪽으로 강하했습니다. 비록 F.E.8 복엽기의 성능이 알바트로스 전투기에 비해서 크게 뒤처졌을지라도, 완전히 무력하기만 한 항공기는 아니었으며, 제대로 조종하기만 한다면 여전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이, 존 헤이 중위는 이 날 이른 아침 알바트로스 C-타입의 복좌식 복엽기를 격추시켰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존 헤이 중위의 차례였습니다.

7대의 아군기와 함께, 랭스(Lens) 서쪽에서 적 편대를 공격했다. 내가 공격했던 적기는 50 미터 거리에서 150 여발의 사격을 받자 화재가 발생했다. 적기는 불 붙은 상태로 추락했고, 적 조종사는 고도 500 미터 상공에서 기체 밖으로 뛰어 내렸다. 그 즉시 적기는 지면에 충돌했고, 시커먼 화재구름이 치솟았다. 기체는 전소됐으며 이따금씩 화염이 치솟았다.

독일공군, 제 11 전투 비행대대,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소위.

리히트호펜이 증언한 존 헤이 중위의 마지막 순간에서 알 수 있듯이, 중위는 의도적으로 기체 밖으로 뛰어내려서 자신의 최후를 앞당겼습니다. 기체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가연성 재질의 연료와 목재, 그리고 도프(니스의 한 종류)로 칠해진 천들은 전부 순식간에 불타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겪는 죽음은 당연하게도 매우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몇몇 용감한 정신을 지닌 조종사들은 불타는 조종석에서 고통받기보다, 기체 밖으로 뛰어내려서 깔끔한 최후를 맞이하기를 바랬습니다.

40 비행대대 소속의 F.E.8 복엽기를 공격하는 쿠르트 볼프 소위의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

다음 날 리히트호펜은 다시 한 번 더 적기들을 급습했습니다. 1월 24일, 7대의 F.E.2b 복엽기들이 비미(Vimy) 고개의 사진 지도를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사진촬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륙했으며, 그 중 2대의 F.E.2b 복엽기에는 임무 달성에 필요한 항공용 카메라가 장착됐습니다. 오스카 그레이그(Oscar Greig) 대위는 사진촬영 임무를 맡은 두 대의 F.E.2b 복엽기 중 한 대의 조종사였으며, 관측수인 존 매클레넌(John MacLennan) 중위와 함께 이륙했습니다.

전선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맥(Mac)'에게 호위기들이 제 위치에 와있는지 물어봤다. 맥은 고개를 흔들었고, 나는 근접하라는 신호인 녹색 베리식 조명탄(Very light)을 쏘아올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맥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기체 경로를 촬영 지역으로 변경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5 비행대대, 오스카 그레이그(Oscar Greig) 대위.

F.E.2b 복엽기들이 비미 고개 상공으로 날아가자 호위기들은 그들의 위쪽 후방에 자리 잡았습니다. 사진촬영 작업이 시작되면서, 그레이그 대위와 매클레넌 중위는, 사진 지도를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항공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 사진촬영 작업에 완전히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정확한 실제 노출값이 필요하며, 사진이 중첩되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각 노출 때마다 스톱워치를 사용해서 촬영해야 한다. 이 밖에도 촬영시 정확한 고도와 직선 비행을 유지해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불만족스러운 사진을 얻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촬영을 할 때에는 조종사와 관측수 모두 촬영작업에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4 비행대대, 존 매클레넌(John MacLennan) 중위.

※ 노출 : 필름에 일정한 광량을 조사하는 것. 너무 오래 조사할 경우 필름이 타버리고 너무 적게 조사할 경우 피사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게 나옵니다.

사진의 정확성을 위한 이들의 헌신은 매우 칭송받을 일이었지만, 지상에서 사진을 대조하고 해석하는 장교들 중에서 이러한 노고를 알아주는 이들은 몇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53 비행대대의 노련한 장교인 토마스 휴스(Thomas Hughes) 중위는,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된 전쟁 때문에 그의 냉소적인 성격이 점점 더 심화되면서 완전히 염세주의적인 성격에 다다렀습니다.

정말 뛰어난 실력을 지닌 관측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촬영된 사진들 중에서 실제로 쓸만한 것들은 몇 없는 데다가, 작업 과정마저 더디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차란히 아군 대공포 부대가 탄막 사격을 펼치는 것처럼, 정밀한 촬영에 힘 쏟기보다는 지상에서 사진 지도를 만드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의역 심함)

영국 육군 항공대, 제 53 비행대대, 토마스 휴스(Thomas Hughes) 중위.

1917년 8월 22일에 만들어진 항공사진 지도.
조종사와 관측수는 사진이 겹쳐지는 부분까지 고려해서 항공사진을 촬영해야했습니다.

이 사례의 경우, 그레이그 대위와 매클레넌 중위는 그들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진촬영 작업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던 탓에 그들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 쓸 새가 없었습니다. 이 둘은 호위기들이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나는 배면 아래에 장착된 카메라가 촬영 지점을 계속 정확하게 바라 볼 수 있도록, 방향타 발판을 밟고 일어서서 지도와 지상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관측수는 카메라로 지상을 바라보면서 이제 막 필름 노출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당시 대공포 사격은 단 한 발도 없었는데, 나는 적 대공포 사수들이 우리가 더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5 비행대대, 오스카 그레이그(Oscar Greig) 대위.

임무 특성상 급습 당하기 쉬운 촬영 기체와 호위기들 간의 거리 간격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골치거리였습니다. 아군기와의 거리가 너무 멀 경우 호위기들은 아군 기체가 피격되기 전에 적기를 차단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반대로 너무 가까울 경우 적기와 아군기들 사이로 호위기 편대가 개입해 들어갈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이 사례의 경우 호위 역할을 맡은 F.E.2b 복엽기들은 호위 대상의 곁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공격 이점을 지닌 리히트호펜은 적기들을 급습할 완벽한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기관총 소리가 들리면서 좌측 주익에 총알 구멍들이 뚫리는 게 보였다. 나는 적기가 내 전방에 오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호위기쪽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관측수가 거의 뒤집어질 정도로 급격히 기체를 기울이면서 우측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반바퀴 선회했을 무렵, 적기의 또다른 사격이 우측 방향으로부터 쏟아졌다. 그 사격으로 인해서 엔진 작동이 멈춰버렸고 방향타 발판를 밟고 있던 오른쪽 발목에도 총알이 박히면서 발판으로부터 발을 떼어놓게 됐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5 비행대대, 오스카 그레이그(Oscar Greig) 대위.

무자비한 공격의 충격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처음 가해진 몇 번의 총격만으로도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적기의 공격을 뜻하는 기관총 사격이 뒤에서 날아왔을 때 나는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색 적기가 강하하면서 멀어지는 게 보였다. 적기의 첫 사격으로 오일 탱크과 연료 탱크가 관통됐고 프로펠러를 쪼개졌다. 이 뿐만 아니라 그레이그 대위님 또한 양쪽 발에 총상을 입으셨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4 비행대대, 존 매클레넌(John MacLennan) 중위.

호위기들이 효과적으로 개입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어쩌면 호위기 조종사들은 야스타 11의 다른 대원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두 번째 F.E.2b 정찰기와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무렵, 리히트호펜은 F.E.2b 복엽기들이 동체 후방 아래쪽에서의 공격에 거의 무방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리히트호펜은 적기의 약점을 자신의 이점으로 활용하는 데에 능숙한 조종사였으며, 그레이그 대위 또한 자신이 조종하는 항공기의 약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선회함과 동시에 적기를 내 시야 안쪽에 두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적 조종사는 계속해서 내 뒤쪽 아래에 머무는 데에 성공했다. 몇몇 예광탄들이 나와 관측수 사이의 계기판을 뚫고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사격이 멈추자 우리는 전선 방향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관측수가 기체 뒤쪽을 가리키면서, 또다른 공격이 시작됨을 알렸다. 잠시 후, 자그마한 진홍색 복엽기가 우리 위쪽을 지나치면서 우측으로 선회하는 모습이 보였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5 비행대대, 오스카 그레이그(Oscar Greig) 대위.

엔진이 고장난 상태에서 그들의 후미에 들러붙은 리히트호펜의 모습은,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다가오는 저승사자처럼 보였을 겁니다.

기체는 오로지 활공비행만 가능한 상태였고 엔진 출력이 부족했던 탓에 기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폰 리히트호펜은 기체가 지면으로부터 겨우 수 백 피트에 다다를 때까지 꾸준히 하강하면서 우리들을 계속 공격했다. 그는 항상 뒤쪽과 아래쪽에서만 공격해왔는데, 그 방향은 우리가 반격하지 못하는 위치였다. 딱 한 번 리히트호펜이 우리 앞쪽으로 날아왔을 때 전방 기관총을 사용해서 두 번의 사격을 가했었지만, 너무 먼 거리였던 탓에 별 소득이 없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4 비행대대, 존 맥레넌(John MacLennan) 중위.

알바트로스 D.II 전투기의 공격을 받는 F.E.2b 복엽기.

이런 상태에서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무사히 지면에 착륙해서 그들의 기체를 파괴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엔진 시동을 걸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봤지만 간헐적으로 털털 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미(Vimy)와 프헤누아(Fresnoy) 사이에 배치된 다수의 야전 통신선들 사이로 활공해서 착륙하는 것 뿐이었고, 기체가 통신선들을 끊고 멈추는 과정에서 잠시 동안 뒹굴어야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5 비행대대, 오스카 그레이그(Oscar Greig) 대위.

매클레넌 중위는 부상당한 그레이그 대위가 조종석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을 도와준 다음 불꽃 신호기(flare torch)를 이용해서 그들의 기체에 불을 붙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자기들을 격추시킨 승자보다 훨씬 더 안전한 착륙에 성공했었습니다. 그들이 시도했던 단 한 번의 대응 사격이 리히트호펜의 기체에 적중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신형 알바트로스 전투기에 도입됐던 일엽반기 주익의 고질적인 취약점 때문에, 기체 주익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은 리히트호펜은 자신이 격추시킨 희생자들 곁으로 비상착륙해야했습니다. 리히트호펜은 착륙하는 과정에서 지면과 살짝 충돌했던 탓에 기체가 뒤집히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야했습니다.

내 충돌에 적잖이 놀란 두 영국인들은, 마치 운동선수(sportsmen)들처럼 나를 반겨주었다. 그들은 내가 왜 그렇게 소란스럽게 착륙했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두 명의 영국인 조종사들은 내가 격추시킨 사람들 중에서 최초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기쁜 일이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기체를 이전에 하늘에서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 중 한 명이 답하기를, '오, 그럼요, 난 당신 기체를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그 기체를 Le Petit Rouge(붉은 꼬마)라고 부른 답니다.'라고 말했다.

독일 공군, 11 전투 비행대대,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소위(Manfred von Richthofen).

※ 고전 동화인 Le petit chaperon rouge(빨간 망토를 쓴 소녀)를 이용한 말 장난인 것 같습니다. 주로 프랑스인들이 리히트호펜을 지칭할 때 쓰던 별명이라고 하며, 영국인들은 보통 붉은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는 듯 합니다.

리히트호펜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다시 겪을 수 있는 이 끔직한 사고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 날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겼던 리히트호펜이 신형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멀리하고, 한물간 기종으로 평가받던 할버슈타트 D.II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했었던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무렵 알바트로스 D.III 전투기의 취약한 주익은 비슷한 여러 사고들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할 때까지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야 했습니다. 독일군은 뉴포르 전투기의 주익 구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뉴포르 전투기와 똑같은 취약점까지 수용하고 말았습니다.

할버슈타트 D.II 전투기로 비행 중인 리히트호펜의 모습을 표현한 항공화.
1917년 초 리히트호펜은 할버슈타트 D.II 전투기로 12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습니다.

... (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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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하트의 저서 Bloody April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분을 번역해봤습니다.

의역 및 오역이 심하기 때문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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