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발트 뵐케의 죽음 1차대전 전투기

Somme Success: Aerial Warfare on the Somme 1916 에 나온 내용 일부를 번역했습니다.
의역 및 오역이 많기 때문에 이 점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916년 10월 28일, 뵐케(Boelcke)와 그의 전투비행대대(Jagdstaffel 2)는 악천후가 잠시 그친 기간에 출격했습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국의 제 24 비행중대와 맞닿뜨렸습니다.
오후 4시 30분 쯤, 뵐케와 체스 게임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 우리들은 보병 공격이 진행 중인 전선으로 불려갔다. 머지 않아서 우리들은 플레흐(Flers) 상공에서 발견한 영국의 1인승 고속기들을 공격했는데 그들은 우리들의 공격을 꽤 잘 방어해냈다.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우리들은 순간적으로 짧은 사격기회만 가질 수 있었고, 이전에 우리들이 성공적으로 잘 써먹던 전술 기동인, 한 명씩 순차적으로 적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기동으로 영국기들을 격추시키려고 노력했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에르빈 뵈메(Erwin Böhme) 소위.

리히트호펜(Richthofen) 소위 또한 그 전투에 참여해있었습니다.
우리 여섯 명은 그들 두 명을 상대로 교전했다. 설령 그들이 스무 명에 달했었더라도 우리들은 공격 신호를 받는 것에 전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교전 양상이 벌어졌다. 뵐케 대위님이 적기 한 대를 향해서 이동한 후에 나는 다른 적기 쪽으로 이동했다. 뵐케 대위님 곁에는 대위님의 친한 친구(에르빈 뵈메)가 함께 비행했다. 그 전투는 꽤 재미있었다. 둘 다 사격을 퍼부었고 영국인들이 추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소위.

오스발트 뵐케(Oswald Boelcke)

호커(Hawker) 소령은 당시 그 장소에 없었지만, 휘하의 조종사들이 목격한 증언을 토대로 상세한 전투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나이트(Knight) 중위는 고도 8,000 피트 상공에서 비행했고, 엔진 문제로 이륙이 지연됐던 멕케이(McKay) 중위는 그보다 1,500 피트 아래에서 비행했다. 포지에(Pozières) 상공 10,000 피트 지점에서 6대의 고속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적기들은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약 5분 동안 공격을 주저했다. 그러다 적기 한 대가 측면으로 기울어지면서 맨 위쪽에 있던 나이트 중위를 향해서 강하해왔다. 그러나 나이트 중위는 그 행동을 수상하게 여겼기 때문에 반격하지 않았다. 중위는 적기들이 전부 자기 쪽으로 강하해오고 나서야, 즉시 나선형으로 선회하면서 적기들의 공격을 피했다. 전투 중에, 또다른 적기 여섯 대가 합류하면서, 12대의 적기들이 DH 전투기들을 상대로 교전했고, 그 중에서 몇 대는 맥케이 중위 쪽으로 하강해와서 공격했다. 적기들이 차례대로 DH 전투기의 후미로 하강해왔지만, DH 전투기들은 즉시 날카롭게 선회해서 상승 이탈하는 적기의 아래쪽으로 파고들었다. DH 전투기들은 적기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지 않도록 직선으로 강하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했지만, 적기들이 시야에 포착될 경우 주저없이 짧은 사격을 가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4 비행중대, 라노에 호커(Lanoe Hawker) 소령.

에어코 DH.2 전투기를 급습하는 알바트로스 D.II 전투기들

적기의 후방으로 선회하고 회전하는 행동들은 순전히 조종사들의 본능적인 직감에 의해서 수행됐으며, 그와 동시에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다른 전투원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1초가 채 안되는 순간적인 반응과 초자연적인 감각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뵐케와 내가 우리 사이에 있던 영국인을 막 잡으려던 순간, 리히트호펜에게 쫓기던 또다른 적기가 우리쪽으로 가로질러왔다. 뵐케와 나는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그를 피했지만, 내 기체 주익과 뵐케의 주익이 우리들의 시야를 순간적으로 가려버렸던 탓에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것이 그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내 오른쪽 몇 미터 근방에서 갑자기 뵐케가 튀어나왔을 때의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뵐케는 기체를 하강시켰고 나는 내 기체를 상승시켰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에르빈 뵈메(Erwin Böhme) 소위.

가볍게 스친 정도의 충돌이었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독일 항공기 두 대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즉시 "충돌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공중 충돌 현장을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사실 충돌 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두 기체는 그냥 서로 접촉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두 기체가 엄청난 속도로 비행 중인 상황이라면,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끔찍한 충격 효과를 만들어냈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소위.

영국인 조종사들은 철저하게 냉정한 시각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약 5분간의 격렬한 전투 후에, 적기 두 대가 충돌했다. 적기 하나가 좌측으로 선회하던 나이트 중위 쪽으로 하강했다. 그 적기는 오른쪽 방향으로 상승했고, 나이트 중위에게 하강하던 또다른 적기의 우측 주익이 상승하던 적기의 좌측 주익과 충돌했다. 적기들이 잠시동안 추락하는 것이 목격됐다. 단 한 대의 적기만이 조종사의 통제하에 활공비행으로 하강하면서 동쪽 방향으로 이탈하는 것이 목격됐다. 그러나 DH 전투기들은 다수의 적기들과 교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잠깐 동안만 그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제 24 비행중대, 레이노 호커(Lanoe Hawker) 소령.

아서 제럴드 나이트(Arthur Gerald Knight) 중위

충돌 후에, 두 조종사들은 지상을 향해서 추락했습니다.
그 충돌은 아주 가벼운 접촉이었지만, 우리들의 엄청난 속도가 그 접촉을 치명적인 충격으로 만들었다. 운명의 선택은 언제나 지독하게 어리석다. 내 기체는 오로지 착륙 바퀴가 떨어져 나갔을 뿐이었지만, 뵐케의 기체는 좌측 주익 끝단 부분이 찢겨져 나갔다. 2백여 미터를 추락한 후에 나는 내 기체의 조종성을 되찾고 아군 전선으로 부드럽게 활공하는 뵐케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뵐케의 기체는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져있었다. 그러나 뵐케가 구름층 아래 쪽으로 진입할 무렵, 그곳에서 부는 돌풍으로 인해서 뵐케의 기체는 점점 더 심하게 기울어졌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에르빈 뵈메(Erwin Böhme) 소위.

스승이 추락하는 모습을 내려보면서, 뵐케의 제자들은 뵐케가 비상 착륙을 시도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알바트로스 전투기가 그들과 함께 조금만 더 버텨내기를 바랬습니다. 이 상황은 순조롭게 해결될 수도 있었습니다.
뵐케 대위님은 적기로부터 이탈한 후에 큰 곡선을 그리면서 하강했다. 나는 대위님이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대위님께서 내 밑으로 하강해왔을 때에 기체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없었지만, 대위님은 구름 속에서 기체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리셨다. 이제 대위님의 기체는 완전히 조종불능에 빠져들었다. 뵐케 대위님의 충직한 친구가 대위님 곁에 계속 머무르면서 하강했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소위.

뵈메 소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뵐케가 수평을 유지하지 못한 채 포진지 주변의 지상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포진지 참호에서 그를 구조하려고 뛰쳐나왔다. 내 친구 곁에 착륙하려던 나의 시도는 그곳에 있는 참호와 포탄 구덩이들 때문에 불가능했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에르빈 뵈메(Erwin Böhme) 소위.

뵈메 소위는 비통한 심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탓에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뵈메 소위는 파손된 착륙바퀴로 부주의하게 착륙하려다가, 그 자신을 죽일 뻔 했습니다.
나는 재빨리 우리 비행장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다음 날까지 내 기체가 착륙하면서 뒤집어졌었다는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기억이 없다. 나는 완전히 주의가 산만해진 상태였지만, 아직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차를 타고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시신을 건네주었다. 뵐케는 추락 당시에 사망한 것이 분명했다. 뵐케는 완충 헬멧을 절대 착용하지 않았었고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안전벨트를 끝까지 조이는 일도 전혀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뵐케는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았던 추락 사고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에르빈 뵈메(Erwin Böhme) 소위.

에르빈 뵈메 소위

제 2 전투비행대대는 이 비보에 망연자실했습니다. 뵐케는 그들의 스승이자 엄격한 상관이었지만, 부하들에게 있어서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뵈메 소위는 특히나 더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꼈지만, 공중전 특유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 사고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 자신을 표면적으로나마 다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적막에 잠기게 되면 나의 두 눈은 나의 스승이자 친구인 동료가 내 곁에서 추락했던 그 순간의 끔찍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의문이 다시 한 번 더 떠오른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가 도대체 왜 이 비논리적인 운명의 희생자로 최후를 맞이했어야 하는가?

독일공군, 제 2 전투비행대대, 에르빈 뵈메(Erwin Böhme) 소위.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침통했습니다. 영국 육군 항공대는 그들에게 재앙과도 같았던 뵐케의 죽음을 인지하고 정중한 예를 갖췄습니다. 제 3 비행중대의 토마스 그린(Thomas Green) 중위는 그의 목숨을 걸고 독일군 전선으로 날아가서 헌화를 떨어뜨렸습니다. 그 밖에도 오스나뷔르크(Osnabruck)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영국 육군 조종사들 또한 뵐케의 장례식에 많은 헌화를 보냈으며 그 중에는 뵐케의 20번째 격추 피해자였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대위도 포함돼있었습니다.

오스발트 뵐케의 장례식 사진

캉브레 성당에서 진행된 뵐케의 장례식

우리들의 용감하고 정중한 상대였던, 뵐케 대위를 추모하며.
영국 육군 항공대의 영국인들로부터.

독일군 전선에 헌화를 떨어뜨리는 영국군 조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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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공군의 아버지라고 불리웠던 오스발트 뵐케 대위는 생전에 자신이 격추시킨 영국기 곁에 착륙해서 조종사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포로로 붙잡힌 조종사들이 살아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영국군 전선에 투하하는 등 매우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에 영국군 조종사들은 뵐케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헌화를 독일군 전선에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뵐케의 사망 요인은 두개골 골절이었으며, 뵈메 중위의 증언처럼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기만 했었더라면 그렇게 심하지 않았던 추락 사고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뵐케는 생전에 총 40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으며, 2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아서 제럴드 나이트(Arthur Gerald Knight) 중위는 대위로 진급한 후 제 29 비행중대의 편대장으로 전출돼서 B 편대를 이끌었습니다. 나이트 대위의 총 격추 수는 8대였으며 생전에 전공십자 훈장과 무공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1916년 12월 20일, 나이트 대위는 만프레드 폰 리피트호펜의 30번째 격추 희생자로 추락하면서 2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 알프레드 에드윈 맥케이(Alfred Edwin McKay) 중위는 1917년에 대위로 진급했지만 신병들의 교육을 위해서 전선에서 잠시 물러나야했습니다. 그러나 전선 후방의 생활이 지겨웠던 멕케이 대위는 1917년 후반에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고, 한 달 동안 스패드 S.VII 전투기로 6대의 적기를 더 격추시키게 됩니다. 1917년 12월 28일, 맥케이 중위는 칼 멩코프(Carl Menckhoff) 중위의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격추되면서 2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맙니다.

- 에르빈 뵈메(Erwin Böhme) 소위는 오스발트 뵐케와 아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뵐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조사위원단은 뵈메 소위의 잘못이 아니라고 판결을 내렸고, 이후 마음을 추스린 뵈메 소위는 다시 임무에 복귀하게 됩니다. 꾸준히 전과를 쌓아올리던 뵈메 소위는 중위로 진급했으며 생전에 24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격추 기록을 달성했던 1917년 11월 29일, 두 번째 비행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영국 육군 항공대의 존 패튼(John Patte) 대위와 필립 레이체스터(Philip Leycester) 중위가 탑승한 F.K.8 정찰기의 역공격을 받고 기체가 전소되면서 3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뵈메 중위의 기체는 영국 전선 후방에 추락했기 때문에 영국군은 뵈메의 시신을 수습한 후 군장의 예를 최대한 갖추어서 그의 장례식을 치루어주었습니다.

이외에도 레이노 호커 소령은 1916년 11월 23일에 리히트호펜에게 격추되면서 사망했고,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대위 또한 1918년 4월 21일에 아서 로이 브라운과 대공포 부대의 기관총 사격을 받고 사망함으로써 본문에 언급된 대부분의 인물들이 1차 세계대전의 끝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ps - Lanoe를 라노에라고 발음해야되는지 레이노라고 발음해야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프랑스쪽 이름인 것 같은데... 영국 발음으로는 어떻게 발암되는지 아시는 분은 부디 꼭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T_T

덧글

  • Wish 2018/11/14 22:04 # 답글

    전쟁은 비극이지만 그 속애서 서로 적군임애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예를 갖춰주는데에서 진정한 신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만요
  • kodamcity 2018/11/15 23:29 #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의리를 지키거나 신사적인 행동을 하기가 참 힘들텐데 여러모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 존다리안 2018/11/15 11:55 # 답글

    이것이 나름의 기사도군요.
  • kodamcity 2018/11/15 23:32 #

    가끔씩 드물게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T_T
  • MK 2018/11/16 00:01 # 삭제 답글

    잘 정리된 이야기 재밌게 보았습니다.

    Lanoe는 (레노-)라고 불린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Ulh-XnuLkuo
  • kodamcity 2018/11/18 08:58 #

    답변 감사합니다.
    라노에라고 발음되지는 않나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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