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2B 복엽기의 몇몇 교전 기록들 1차대전 전투기

1916년 6월 25일 , 22 비행중대의 W O 튜더-하트(W O Tudor-Hart) 중위는 W A 서머스(W A Summers) 중위가 조종하는 F.E.2b 복엽기의 관측수로 비행했습니다. 그들은 심각한 곤경에 빠졌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조종사들의 사기가 마침내 거의 꺾여졌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우리는 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에 고도 9,000 피트(2,743m) 상공에서 초계비행을 수행했었는데, 구름은 대략 7,000 피트( 2,133m) 부근에 형성돼있었고, 고도 10,000 피트(3,048m) 상공에서는 아군 대공포 부대가 두 항공기 무리들을 향해서 대공포 탄막을 퍼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공포 탄막의 한쪽은 남서쪽 방향에서 기지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북서쪽 방향에서 기지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남서쪽 방향에서 접근 중인 편대를 향해서 날아갔는데, 그 편대는 10대의 항공기들로 구성돼있었다. 적기들은 3대씩 3열로 편대를 형성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대는 그 뒤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편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도 9,500 피트(2,895m) 상공으로 상승했고 적기들은 우리들의 머리 위를 그대로 지나쳐갔다. 적기들을 쫓아서 선회한 후 우리는 맨 뒤쪽에 있는 적기를 향해서 사격을 가했는데, 그 기체는 우리보다 200 야드 위에 있었지만 다른 적기들에 비해서는 고도가 낮은 편이었다. 그러자 맨 뒷 열에 있는 적기들이 사격을 퍼부으면서 편대 대형을 풀고 제각기 흩어졌다. 일반적인 교전 상황이 이어졌고 우리는 놈들과 15분 동안 싸웠다. 우리는 좌우로 선회하면서 싸웠고, 우리 쪽으로 강하 해오는 적기들을 향해서 항공기들 사이로 사격을 퍼부었다. 정면에서 놈들을 공격하는 동안 위쪽이랑 측면 방향에서 달려드는 강하 공격이 수차례 있었다. 내가 뒤를 흘겨보자 독일놈 한 놈이 우리 뒤쪽으로 강하해오는 게 보였고, 서머스에게 이를 알리자 기체를 재빨리 선회시키면서 독일놈에게 기관총 사격을 퍼부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는 또다른 적기 쪽으로 선회하면서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교전 내내 기관총 발사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가 소지한 탄약은 47 발짜리 드럼 탄창7개 뿐이었기 때문에 탄약을 아끼기 위해서, 적 기체로부터 100 야드(91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만 사격을 실시했다. 적기들은 우리 편대 모두를 상대로 교전했다. 한 번은 빠른 속도를 지닌 독일 복엽기가 시속 95 마일(152km/h)의 속도로 꼬리 쪽으로 접근해왔었다. 서머스에게 빙글빙글 돌라고 신호를 보낸 후 적기가 100 야드 안쪽으로 접근해오는 순간을 노려서 방아쇠를 당겼는데, 탄피 회수 가방이 탄피로 가득 차는 바람에 기관총 작동이 멈춰버렸다. 독일놈으로부터 발사된 탄환이 드럼 탄창의 클립을 타격하면서 내 목에 걸어놓은 쌍안경에 총알 파편이 튀었고, 이 모습을 본 서머스가 즉시 기체를 움직여서 반응했다. 서머스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기수를 하강시켰고 독일놈이 쏘아대는 총알이 우리들 머리 위로 빗발쳤다. 드럼 탄창이 기체 밖으로 날아갔기 때문에 나는 선회하면서 마주친 또 다른 적기에게 대응하기 위해서 새로운 탄창을 부착했다. 나한테서 드럼 탄창의 절반가량에 해당되는 사격을 받았던 적기 한 대가 우리 앞쪽에 있는 동쪽 마을로 급격하게 하강하는 모습을 봤다. 나는 너무 바빴기 때문에 적기가 추락하는 모습을 끝까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독일 놈들은 하나둘씩 전투에서 이탈했고 우리가 탄약을 모두 소진했을 즘에는 단 두 대의 적기만이 우리 편대와 교전하고 있었다. 탄약이 모두 소진됐을 때에 서머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서머스는 우리 기체를 고도 6,000 피트(1,828m)로 하강시킨 후 독일 놈들의 대공포 세례를 뚫고 아군 전선으로 귀환했다. 우리는 운이 아주 좋았는데 우리 둘 다 아무런 부상없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바퀴에는 총알구멍 두 개가 뚫려 있었고, 기계식 연료 펌프는 떨어져 나간 데다가, 총알구멍들이 꼬리 부근이랑 꼬리 뼈대, 주 날개보, 주익 등에 뚫려있었다. 그중에서 총알구멍 하나는 내 좌석 정면 부근을 관통해있었다. 독일 놈들은 분명 우리한테 1,000 발 이상을 퍼부었거나, 어쩌면 2,000 발 이상을 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건 마치 연속 사격이 이어지는 '미친 순간'마다 끊임없이 '얻어맞았다'는 뜻이었다. 매 순간마다 총알이 날카로운 소음을 발생시키면서 우리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속도가 느린 FE2B 복엽기로 14대의 독일 놈들과 15분 동안 싸웠고 결국에는 놈들의 편대를 와해시키고 전투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이건 매우 흥미진진한 교전이었고 나는 영국 육군 항공대가 독일 놈들에 비해서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머스는 뛰어난 조종사임이 틀림없다.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제 22 비행중대, W O 튜더-하트(W O Tudor-Hart) 중위.

F.E.2B 복엽기의 앞좌석에 장착된 루이스 기관총.
프로펠러 날이 동체 후방에 있었기 때문에 탄피나 탄창을 제대로 수거해주지 않으면 프로펠러 날이 손상될 위험이 있었다.

... (중략) ...

솜 전투가 시작된 날, 웹 대위의 F.E.2B 복엽기에 탑승한 튜더-하트 중위의 마지막 교전 기록입니다.

나는 웹(Webb) 대위님의 기체에 탑승했고 우리는 7월 1일 11시경에 독일군 전선 4~5마일 뒤쪽으로 날아갔다. 남서쪽 부근에서 8대의 독일군 항공기들이 우리보다 높은 고도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적기들 쪽으로 날아갔다. 적기 두 대가 약 300 야드(274m) 간격으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갔고, 나는 그들 중 하나를 골라서 사격했다. 그러자 적기 두 대 모두 우리에게 반격해왔다. 나는 웹 대위님께 선회하라고 신호했고 이 덕분에 우리 뒤쪽에 있는 또 다른 적기에게 사격을 가할 수 있었지만, 갑자기 웹 대위님께서 기체를 하강시켰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자, 웹 대위님께서 자신의 복부를 가리키시더니 이내 '조종간' 위로 쓰러지셨다. 내 생각에 대위님께서는 총격을 받은 직후 단 몇 초 만에 사망하신 것 같았지만, 대위님의 이 마지막 행동이 아마도 우리 기체를 구하셨던 것 같다. 우리 기체는 즉시 독일군 점령지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고, 나는 내 기관총을 다시 부여잡고 우리 쪽으로 강하해오는 적기에게 사격을 퍼부었다. 이런 상황은 끊임없이 반복됐지만, 내가 쏘아대는 탄환들 덕분에 적기들은 매번 강하를 중단하고 공격을 포기해야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적기들은 우리보다 높은 고도에서 끊임없이 사격을 퍼부어댔다. 내가 기체 방향을 아군 영공 쪽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는 오로지 후방 기관총을 조작하러 돌아설 때뿐이었다. 나는 웹 대위님을 조종석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방풍창 너머로 내 손을 집어넣어서 조종간을 조종해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치 않았지만, 나는 가능한 끝까지 싸우려고 노력했고, 기체 방향을 아군 영공 쪽으로 향하게끔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기관총 사격을 해야 할 상황이 너무나 잦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진로 변경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불규칙한 진로 변경 덕분에 우리 기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마침내, (여전히 공격받고 있긴 했지만) 기체를 지면 가까이 하강시킬 수 있었고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체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것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소총을 든 다수의 병사들이 보였고, 나는 내가 기체를 전소시키기 전에 그들의 총격을 받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체를 일부러 하강시켜서 지면에 충돌하게끔 유도했다. 주익 끝부분이 먼저 부딪히면서 기체 전체가 파괴됐고, 나는 기체 밖으로 튕겨져나가면서 타박상과 측면 마비 그리고 발목과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제 22 비행중대, W O 튜더-하트(W O Tudor-Hart) 중위.

F.E.2B 복엽기의 추락을 묘사한 항공화

... (중략) ...

육군 항공대 소속 23 비행중대의 윌리(Wyllie) 대위는 일련의 공세적 초계 비행 임무와 정찰 임무를 배정받았습니다. FE2B 복엽기는 언제나 문제를 몰고 다니는 듯 보였고 대위는 다시 한 번 더 난전 상황을 겪게 됩니다.

오후 3시 15분경, 적 지원군이 도로로 증원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정찰 임무를 나갔었다. 목표 지역에서 2시간 동안 머물 것을 명령 받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상승을 방해하는 폭탄 네 발을 장착하고 있었다. 전선 7,500 피트(2,286m)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하자마자 8,000 피트(2,438m)로 상승했다. 포격이 거세게 빗발쳤고, 보(Vaulx)에서 독일군 항공기 다섯 대와 조우했다. 15분 동안의 근접 전투 후에 독일 놈들은 진저리가 났는지 하강하면서 우리들에게 마지막 사격을 가했다. 솔리(Solly)는 한 친구에게 아주 뛰어난 사격을 가했는데 그 친구는 활공 비행으로 조금 날더니만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내 편대는 아주 잘 행동했고 열심히 싸웠다. 전투의 승패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솔리는 전투 초반에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지만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또 다른 총알은 솔리의 신발 하나를 찢어발겼다. 솔리가 자신의 기관총으로 싸우는 방식은 대단했는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260발(드럼 탄창 5개 반)에 달하는 탄환을 발포했다. 솔리는 정말 기막히게 운이 좋았는데 솔리로부터 1피트(30cm)도 채 안떨어진 좌석 위쪽 튜브에 총알 하나가 관통해서 기체 위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솔리의 조명탄 총은 다른 총알에 맞아서 박살났고, 지도를 넣어둔 가방도 찢어졌다. 우리는 적들을 쫓아서 하강할 수 있었지만 서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기 때문에 고도를 낮추는 것은 너무 위험했고 우리들의 주임무는 정찰이었다. 우리는 놈들 중 세 대가 깨엉(queant)에 있는 비행장에 착륙하는 것을 봤다. 전선을 다시 가로질러서 돌아올 즘에 우리는 곱실(Gopsil)의 뒤쪽으로 빠르게 접근 중인 알바트로스 복엽기를 발견했다. 우리는 즉시 1,000 피트(304m) 정도 하강해서 그놈에게 사격을 가했다. 다른 두 대도 똑같이 행동했고 이어서 다시 한 번 더 하강해서 사격하자 독일놈은 플루방(Plouvain)으로 도망쳤다. 이 시기에 우리는 기관총 사격을 아주 심하게 받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편대를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고, 비록 고도는 낮았지만, 전원 무사히 전선을 건너오는 데에 성공했다. 유감스럽게도 솔리는 저녁에 중대를 떠났는데 중대에 있어서 아주 큰 손실이었다. 곱실의 기체는 알바트로스 복엽기에게 라디에이터를 피격당했지만, 그래도 비행장에 착륙했다. 불쌍한 친구, 격추 당한지 몇 일 지나지도 않았을 터인데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제 23 비행중대, 해롤드 윌리(Harold Wyllie) 대위.

야간 폭격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F.E.2B 복엽기들

... (중략) ...

11 비행중대의 모리스(Morris) 소위와 글로버(Glover) 병장은 독일군 항공기 편대에 돌격했습니다.

반 시간 동안 초계비행을 수행하면서 고므꾸흐트(Gommecourt)에서 북쪽의 쑤쒜(Souchez)로 선회하던 도중, 독일군 전선에서 쑤쒜(Souchez) 쪽으로 날아오는 한 편대를 목격했다. 나는 기수를 쑤쒜(Souchez) 방향으로 선회시킨 후 우리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11대의 항공기들을 주시했는데, 그들은 전부 높은 고도에서 비행 중이었다. 약 5분 후 우리는 그들이 11대의 독일 놈들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우리는 고도 9,000 피트(2,743m)에서 비행 중이었고 놈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독일놈은 대략 9,300 피트(2,834m) 상공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놈을 공격했다. 놈들 중 하나가 우리 쪽으로 접근해서 공격했지만 우리가 총알을 몇 발 퍼부어주자 강하 기동으로 도망쳐버렸고, 덕분에 우리는 처음에 공격했던 적기를 계속 공격할 수 있었다. 독일놈은 300 야드(274m) 거리에서 사격했지만 글로버는 우리가 30 야드(27m) 이내로 접근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가 적기에게 대략 10발 정도 사격을 가했다. 그러자 독일놈은 둥글게 선회했고 우리가 적기를 쫓아가는 동안 글로버가 두 번 더 짤막하게 사격을 가했는데 예광탄이 두 번 다 독일놈에게 정확하게 적중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그놈은 하강했고 나는 적기로부터 잔해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독일놈은 계속 하강했고 층운을 통과하면서 이내 사라졌다. 이후에 주변을 둘러보던 도중 우리는 엔진이 고장 나는 바람에 더 이상 상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머지 독일 놈들은 거의 시야 밖으로 멀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귀환하기로 결정했다. 기지로 귀환한 후 우리는 우리 기체 몇 곳이 탄환에 피격돼있는 것을 발견했다. 실린더가 피격되는 바람에 엔진이 망가지는 동안, 좌석 전방에는 총알구멍 하나가 뚫려있었고, 기체 여러 곳이 관통돼있었다. '대공포' 부대는 우리가 피격시켰던 독일놈이 그대로 떨어졌고 확실치는 않지만 지상에 충돌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우리는 기쁜 나머지 펄쩍 뛰었다.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제 11 비행중대, 라이오넬 모리스(Lionel Morris) 중위

최근에 제작된 F.E.2 복엽기의 모습
전방 좌석에 탑승한 관측수는 안전벨트 없이 자세를 잡으면서 기관총을 운용해야했다.

11월 3일 13시 37분, 루카스(Lucas)와 그의 관측수인 A 앤더슨(A Anderson) 중위는 다른 두 대의 F.E,2B 복엽기와 독일군 후방 지역을 촬영하는 정찰 비행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륙했습니다. 루카스와 앤더슨은 곧 그들의 동료들과 떨어지면서 구름 아래에서 불어닥치는 강풍을 이겨내며 임무를 완수하려고 노력하게 합니다.

우리는 편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전선으로 날아간 다음 그 지역에서 대략 2마일 근처에 있는 아군 호위기 세 대를 발견했다. 다른 호위기들은 전혀 안보였기 때문에 대략 10분 정도 기다린 후 아군기 세 대와 함께 목표지역으로 날아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우리 기체가 호위기들보다 더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30초마다 둥글게 선회해서 그들이 우리를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피에르 생 바스트(Pierre St Vaast) 숲 위에 도착해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아군기 두 대는 우리 뒤쪽에 있었고 세 번째 아군기는 우리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었다. 사진촬영을 하는 도중 나는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우리 기체를 끊임없이 동쪽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 번째 사진을 촬영한 후에는 아군 호위기들보다 동쪽으로 더 멀리 밀려나있는 것을 발견했고 루카스에게 선회하라고 신호해서 바람 방향 쪽으로 날아가도록 만들었다. 반바퀴 정도 선회했을 무렵 적기 하나가 구름 속에서 튀어나오면서 꼬리 쪽으로 접근해왔다. 우리가 적기 쪽으로 선회해서 사격을 가하자, 꼬리 쪽에서 또 다른 적기 두 대가 구름 속에서 튀어나오면서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격으로 우리 기체의 보조 탱크 반쪽이 날아갔고, 루카스는 기체를 돌려서 아군 전선 쪽으로 하강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위쪽에 있는 적기에게 사격을 가했지만 그들의 사격 실력은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우리 기체는 말 그대로 총알에 벌집이 됐다. 갑작스럽게 기체가 측면 방향으로 심하게 미끄러지기 시작하더니 엔진에서 충격음이 발생하면서 이내 완전히 멈춰버렸다. 아래를 바라보니 루카스가 좌석 아래로 몸을 구부리고 있었고, 나는 그가 엔진 스위치를 조작하고 있나 싶은 생각에, 손으로 그를 흔들어봤지만, 총알이 루카스의 머리 뒤쪽을 관통하는 바람에 의식을 잃은 상태임을 발견했다. 그때 우리들의 비행고도는 대략 6,000 피트(1,828,m) 부근이었고 나는 기체를 계속 측면 방향으로 미끄러뜨리고 있는 루카스의 왼쪽 발을 방향타 발판에서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루카스의 발을 떼어놓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때 우리들의 비행고도는 겨우 3,000 피트(914m) 부근이었고 독일기 세 대가 여전히 우리 뒤를 쫓아오면서 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나는 엔진이 고장 나고 맞바람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하플랑쿠흐트(Haplincourt)를 넘어 아군 전선까지 날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관총들을 피해서 (이때 우리는 지상 포화도 함께 받고 있었다) 기체를 급격하게 하강시켰다. 불행하게도 루카스의 몸이 좌석에서 반쯤 흘러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착륙을 시도하려는 동안 기체를 수평으로 충분히 유지할 수 없었고, 결국 착륙 바퀴가 지면을 스치면서 주익 쪽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나는 좌석에서 완전히 내동댕이 쳐졌고 루카스는 몇 분 후에 실려 나왔지만,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던 탓에 오후 4시쯤 사망하고 말았다.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제 22 비행중대, A 앤더슨(A Anderson)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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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하트의 저서 Somme Success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분을 번역해봤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1916년 중후반이기 때문에 영국 조종사들이 마주친 항공기들은 대부분 2인승 복엽기들로 추정됩니다.

의역 및 오역이 심하기 때문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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