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4월 무렵, 한 영국인 조종사의 절망 1차대전 전투기

영국 육군 항공대의 용감한 젊은 조종사들은, 단 몇 시간의 비행 교육만 받은 상태로, 붉은 남작과 그가 이끄는 무자비한 에이스 조종사들을 상대해야했습니다. 수적으로 불리한 데다가, 기본적인 비행 기술조차 결여된 영국 육군 항공대의 젊은 소년들은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지휘관들의 명령으로 인하여 완전히 구식이된 항공기를 이끌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공세를 지향해야 한다는 작전 교리의 피해자들이었으며 이로 인하여 지상의 병사들과 다를 바 없이 혹독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1917년 4월 영국 육군 항공대는 275대의 항공기들을 잃었습니다. 사상자의 수는 총 421명이었으며 207명의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수치는 단 한 달 동안 발생한 피해로써 92시간의 비행시간이 누적될 때마다 사망자들이 발생했다는 뜻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신입 조종사들이었으며 이들은 보통 전선에 도착한지 하루나 이틀만에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중략)

그러나 영국 육군 항공대의 지휘관들이 공세 지향적인 교리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영국 왕립 포병대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었으며, 그 결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병사들이 지상에서 죽음을 맞이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압적인 지도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으며 휴 트렌차드(Hugh Trenchard) 장군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3월 26일, 아라스 공세가 시작되기 몇 일 전 트렌차드 장군은 여단장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공세 작전에서 우리들의 목표는 적기들을 전선 상공이 아닌 전선 후방에서 싸우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이 목표의 성공 여부는 육군 정찰 구역의 한계까지 공격적인 초계비행을 수행하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긴 거리를 비행해야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접 호위비행 요청을 허가하지 않아야만 한다. 또한 준장들이 이러한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장관급 지휘부대가 제대로 주시해야만 비로서 달성 될 것이다. 작년에 솜므(Somme) 전선에서 아군 조종사들과 관측수들에 의해서 달성됐었던 공중 우세는 위와같은 작전 개요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영국 육군 항공대, 본부, 휴 트렌차드(Hugh Trenchard) 소장.

휴 트렌차드 소장
영국 육군 항공대의 지휘관이었던 휴 트렌차드 장군은 육군 소속이었던 항공대를 독립시키고 영국 공군을 창설시키면서 초대 공군참모총장의 자리에 오릅니다.

(중략)

4월 6일, 45 비행대대의 조종사들과 관측수들은 그동안 힘겹게 견뎌내고 있던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폭발했습니다. 45 비행대대의 인원들은 이프르(Ypres) 지역의 북쪽에 배치돼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라스 공세가 임박해오는 동안 가차없이 공중 공세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45 비행대대는 이전 달 부터 솝위드 1½ 스트러터 복엽기가 공중 우세 임무에 완전히 부족합하다는 우려를 나타냈었습니다.
손실 그 자체는 우리들한테 그렇게 큰 골치거리도 아니다. 우리는 영국 육군 항공대의 모든 인원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점은 참모진들이 솝위드 복엽기의 성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과, 우리가 수행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임무에 우리들을 투입하는 잘못된 결정으로 너무나 많은 인원과 기체들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이와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은 코트니 대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조종사들이 솝위드 1½ 스트러터 복엽기가 그들에게 배정된 어려운 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모든 적기들이 상승과, 선회, 그리고 속도 면에서 우리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죠프리 콕(Geoffrey Cock) 소위.

솝위드 1½ 스트러터
1916년 초에 등장했을 당시에는 아주 뛰어난 성능의 항공기였지만, 1917년 무렵에는 새롭게 등장한 신예기들로 인하여 순식간에 구형기 취급을 받게 됩니다. 솝위드 항공사는 이 기체를 바탕으로 솝위드 펍 전투기와 솝위드 카멜 전투기를 개발하여 빼앗긴 제공권을 되찾아 오는 데에 큰 공헌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행되는 장거리 사진 정찰 임무는 비행대대원들의 목숨을 더욱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5 비행대대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대부분 장거리 사진 정찰 임무였습니다.
카메라가 부착된 항공기가 전투 편대의 일원으로 편입된 후로는, 편대원 전부가 차트에 명시된 지역 상공의 비행경로에 묶여있어야 했다. 적기들의 압도적인 기체 성능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제한된 공격 기회만 가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진 정찰기를 돌봐야하는 입장 때문에 그 제한된 공격 기회 마저도 사라져버렸다. 전투의 주도권은 적기들에게 모조리 넘겨줘야했다. 우리들은 적기들이 상승하고, 뭉치고, 공격하기 가장 좋은 위치로 이동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시간을 허용해줘야했으며, 우리가 그저 계획된 경로대로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적기들이 공격 준비를 마치고 우리들한테 날아오는 것을 마냥 지켜봐야만했다. 우리들의 전투 목표는 더이상 적기를 격추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적어도 단 한 대의 사진 정찰기라도 기지에 무사히 귀환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하루 하루가 지나고, 임무가 반복되는 동안 사상자들의 수는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때까지 끊임없이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다섯기 편대에서 두 대를 잃거나 여덟기 편대에서 세 대를 잃는 상황에 익숙해졌고, 때로는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귀환해 낼 수 있었는지 의아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몰고 온 항공기들은 보통 더이상 사용이 불가능해진 상태가 되곤 했다. 우리 대대는 손실된 항공기 보충을 제 시간에 지원받지 못하기 시작했고, 한 번은 본부에서 우리 비행대대의 전투력을 유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로부터 노후화된 2인승 뉴포르 복엽기를 요청해서 기체 공백을 메꾸려했다. 이 조치는 우리들을 실소하게 만들었는데, 뉴포르 복엽기는 겨우 2시간 반 분량의 연료만 탑재할수 있었기 때문에 솝위드 1½ 스트러터 복엽기의 보조를 맞출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대의 인명 손실 규모는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쪽으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사실 한 편으로는 코트니 대위 또한 문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호주 출신의 코트니 대위는 자신감이 넘치고 거침없이 말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래동안 골머리를 앓아오던 45 비행대대의 지휘관인 윌리엄 리드 소령에게 상당한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코트니가 70 비행대대에서 복귀했다. 대위는 B 편대의 편대장 자격으로 내 휘하에 돌아왔다. 코트니는 우리 군대의 피해와 솝위드 2인승 복엽기가 지닌 취약점에 대한 그의 견해(적어도 이건 맞는 말이다)를 너무 많이 떠벌린 탓에 9 비행단과 70 비행대대를 짜증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대위가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윌리엄 리드(William Read) 소령.

프랭크 코트니 대위의 행동이 경솔하긴 했지만 적어도 유능한 조종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부대에 보충된 신입 조종사들은 대부분 최소한의 비행 경험만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단순 비행 사고들이 빈번하게 발생됐습니다. 리드 소령은 동정심이 많은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령의 젊은 부하들은 그의 신랄한 비난을 들을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오늘 다수의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C 편대의 신입 조종사인 맥밀란(Macmillan)은 형편없을 정도로 끔찍한 착륙을 시도하다가 착륙 장치의 와이어 세 가닥을 파손시켰다. 이어서 착륙한 콕(Cock)은 비행장을 벗어나면서 기수부터 쳐박힌 탓에 그의 기체를 수직으로 세웠다. B 편대의 또다른 신입 조종사인 해리먼(Harriman)은 기체에서 내리는 와중에 꼬리를 들어올린 탓에 프로펠러가 지면에 닿으면서 프로펠러 날을 박살내버렸다. 해리먼은 엔진 시동을 끄지 않았고 이 덕분에 기체 전체가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나는 다음과 같은 형편없는 조종사 무리들을 데리고 싸울 수 없다. 포브스(Forbes), 에반스(Evans), 해리먼(Harriman), 맥밀란(Macmillan) 그리고 포레스트(Forrest)는 조종사로써 가장 쓸모없는 이들이다. 해리먼에게는 추가교육을 위해서 후방으로 돌려보낼 것을 신청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윌리엄 리드(William Read) 소령.

이 신입 조종사들 중 한 명이었던 노먼 맥밀란(Norman Macmillan) 소위는 훗날 1등급 전투기(scout) 조종사로써의 자질을 꽃 피웠던 만큼 자질은 충분했지만, 다른 조종사들처럼 너무나 성급하게 전선에 배치됐을 뿐이었습니다. 신입 조종사들은 여러 달 동안 훈련을 받았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단 몇 분 만에 최후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관측수들의 경우에는 루이스 기관총을 사용하는 보병들로부터 모집할 수 있었던 덕분에 비교적 상황이 더 나아보일 수 있었지만, 이러한 해결 방법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뿐이었습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지면서 웃기지도 않을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사상자들로 인하여 항공병들의 보충 인력이 급감함에 따라, 우리는 전선의 연대들로부터 지원자들을 요청해야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됐다. 얼마 안가서는 이마저도 녹록치 않아졌는데, 기관총 사수들의 모집을 항공대 자체에서 왜 보충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퍼지면서, 보병들로부터 '자살 클럽(Suicide Club)'에 관한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지원자들은 하늘에서 일어서본 적도 없었다. 그저 루이스 기관총을 장전하고 쏘는 능력 외에는 그 어떤 자격 요건도 없이 받아들여졌다. 이 이름없는 영웅들은 공중전의 격렬한 선회 전투 상황에서 멀미를 느끼거나, 기관총으로 적기를 공격하는 대신 그저 단단히 부여잡고 매달려있는 용도로나 사용했는데 갈수록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내 관측수처럼 두려움이라고는 전혀없는 스코틀랜드 보병 준위같은 사람들이 드물게 들어오기도 했다. 무식하지만 엄청난 배짱을 지녔으며 대단히 호전적인 데다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행복을 느끼던 그는 표적과의 거리에 상관없이 그 어떤 것이든, 그 모든 것이든,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든 간에 어떻게든지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서 안달났다. 한 전투에서 우리는 제 20 비행대대의 FE 복엽기들로부터 예정에 없던 지원을 받았었는데, 준위는 그저 FE 복엽기의 외형이 솝위드 복엽기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 중 한 대를 향해서 총알을 갈겨댔다. 그 때문에 나는 방향타를 강하게 걷어차서 그의 조준 사격을 방해해야만했다. 내가 확신하건데 그가 맞출 수 있었던 것으로는 우리 기체의 꼬리와 방향타, 그리고 주익 끝단 뿐이었을 것이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관측수들은 안전 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기체를 보호해야했습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전투 기동 상황에서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무거운 기관총을 조작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B편대의 지휘관으로써 코트니 대위는 점점 절망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마다 새로운 십자가를 들여와서 새로운 시체를 묻어야 했습니다. 대위는 그의 부하들과 동료들의 생사를 결정해야하는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한테 달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음 날 비행을 위해서 내 편대의 조종사들과 사수들을 짝지어주는 임무는 나에게 있어서 이제 아주 우울한 업무가 됐다. 우리 비행대대에 남아있는 기존의 기관총 사수들은 아마 서너 명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신참들의 열정적인 기백은 기존 사수들의 기술과 경험을 대체해낼 수 없다. 조종사들이라고 형편이 더 나으리란 법은 없다. 내 생각에 나는 우리가 브아딩겜(Boisdinghem)에서부터 함께해 온 열여덟 명의 조종사들 중 겨우겨우 살아남은 세 명의 조종사들 중 한 명이며, 그 외에 합류한 이들 중에서 풍부한 경험을 지닌 조종사들은 겨우 몇 명 뿐이다. 신참 조종사와 신참 기관총 사수를 한 비행기에 태우는 결정은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 많은 기관총 사수를 비행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조종사와 함께 태워서 보내야할까? 아니면 경험많은 조종사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관총 사수를 그의 후방석에 태워야할까? 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이러한 스트레스는 편대장의 입장이 아닌 개인의 입장으로도 심각하게 발생됐습니다. 코트니 대위는 자신이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모든 임무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자신의 최후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금껏 사용해 온 행운보다 훨씬 더 많은 행운이 필요하다. 내 기체나 후방 사수가 공격 받았던 상황들을 되새겨 보면, 독일인들은 마치 내 관측수를 완전히 빗맞추는 요령을 개발하거나 아군 전선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피해만 입히려고 노력하는 방법을 개발해낸 것 같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 온 행운은 대다수의 우리 대원들처럼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초창기에 내가 갈망하던 전투에 관한 열망은 이제 아주 희미해진 상태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Hugh Trenchard) 대위.

기사도 정신이 존재하던 낭만적인 공중전은 실제로는 없었습니다.
당시의 신문 기자들은 저산소증이나 저체온증, 낙하산조차 주어지지 않는 혹독한 환경, 기관총의 무시무시한 화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에이스 조종사가 몇 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는지에 대한 내용이나 조종사들의 낭만적인 무용담을 쏟아내기 바빴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트니 대위는 4월 6일에 또다시 프랑스의 릴(Lille)을 향한 장거리 정찰 임무를 명령 받았습니다. 이날 일찍 용감한 정찰기 한 대가 새벽을 틈타서 은밀한 사진 촬영 임무를 시도했었지만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말은 촬영 임무가 완수될 때까지 같은 임무가 반복돼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코트니 대위와 그의 부하들은 새벽 무렵의 은밀한 이점없이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8대의 항공기가 동원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솝위드 1½ 스트러터 복엽기의 대원들 중에서 한 명인 J. A. 마샬(J. A. Marshall) 소위와 그의 관측 수인 F. G. 트러스콧(F. G. Truscott) 소위는 그들의 악운을 속이기 위한 교활한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트러스콧은 B 편대의 장교식당 회장이었는데 프랑스 화폐로 구성된 다양한 회비를 관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정찰기 곁에 찰떡같이 붙어 다니라는 정찰 임무가 공표됐고 트러스콧은 마샬 소위의 관측수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임무를 준비하는 동안, 트러스콧은 재미난 볼거리를 보여줬는데 프랑스 돈다발로 두툼해진 봉투를 자기 비행 코트 주머니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저의 특별한 자가보호 시스템입니다. 만약에 제 기체가 공격 당하는 모습을 본다면 전부들 이렇게 말하실 겁니다. "저기 봐, 우리 식당 회비가 날아가겠어", 그리고는 전부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 주변에 몰려 들게 될 겁니다.' 그 때 우리들은 언젠가 격추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늘 그래왔듯이, 그들은 다시 한번 더 독일군 전투기 편대를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첫 번째 적기가 편대 오른쪽으로 접근해왔고, 우리 편대 곁을 따라서 살짝 앞쪽으로 날아가다가, 300 야드 거리에서 기관총을 발포했다. 그러고는 우리 편대 앞쪽을 가로지르면서 능숙하게 빠져나갔고 나는 그 순간에 전방 기관총을 이용해서 70발 가량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나서 또다른 적기가 편대 뒤쪽으로 접근해왔고 우리 편대 중앙과 후방에 있는 아군기를 공격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조프리 콕(Geoffrey Cock) 소위.

코트니 대위의 편대원들이 편대진형을 잘 유지한다면 모든 게 괜찮았을 것입니다. 독일군 전투기들은 그들 주변을 맴돌면서 기회를 엿봤습니다.
쇼가 진행되면서, 캠벨(Campbell)이 처음으로 격추 당했다. 마샬과 트러스콧은 내 좌측 후방에서 살짝 더 높은 고도로 비행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또다른 아군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6대에서 8대의 독일놈들이 접근해왔고, 사격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서 기관총 사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장거리 사격으로 발사된 총알 중 한 발이 마샬이 탑승한 기체의 삭구(rigging)를 요행으로 명중 시킨 것 같아 보였다. 내가 돌아봤을 땐 마샬의 우측 주익이 위쪽으로 접히면서 기체가 뒤집어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바로 옆에 있던 아군기와 충돌해버렸다. 두 기체에서 발생된 파편들이 온 사방으로 튀어 나갔고, 몇몇 파편들은 내 기체의 꼬리로부터 겨우 몇 피트 거리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두 기체에 탑승했던 내 동료들에게는 그 어떤 희망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어떤 감정이 결여돼있던 내 머리속에서는 그저 '잘가 트러스콧, 그런데 우리 식당 회비는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들었고, 그러자마자 또다른 공중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더이상 이 일에 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45 비행대대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암울한 마음으로 비행장으로 귀환했을 때 그들은 더욱 더 쓰라린 사실을 접해야했습니다.
내 관측수였던, 오스틴(Austin)과 내가 마침내 장교 식당으로 걸어들어왔을 때에, 한 상등병이 나에게 두터운 편지 봉투를 전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트러스콧씨가 오늘 저녘에 자기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걸 대위님께 전해주라고 말했었습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큰 충격을 받고 비통한 심정에 빠져있던 코트니 대위는 자신의 지휘관에게 그대로 달려갔습니다. 불행하게도, 윌리엄 리드 소령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심지어 그 곁에는 2 여단의 지휘관으로 유명한 톰 웹-보웬(Tom Webb-Bowen) 준장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코트니 대위가 문제를 일으킬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동료를 잃고 비통한 심정에 빠져있던 네 명의 조종사들 중 한 명이, 준장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솝위드 2인승기가 아주 끝내주는 항공기라지만, 내 생각엔 우리들을 완전히 끝장 낼 항공기입니다.' 그 자신을 본국으로 전출시킬만한 최고의 언급이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노먼 맥밀란(Norman Macmillan) 소위.

어떠한 상황이건 간에 이러한 모습은 하급 장교가 자신의 상관에게 취할만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전후 사정을 알고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들은 웹 보웬 준장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 그 어떤 항공기가 영국 육군이 요구하는 장거리 비행 임무에 부합할 수 있었을까요? BE2e 복엽기는 훨씬 구식인 데다가, 더 느리고 무장도 더 뒤쳐졌습니다. FE2b 복엽기는 이미 온갖 임무에 배정돼있었으며, 이 마저도 감당치 못할 정도로 전선에서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영국 육군은 그저 새로운 신형기를 충분히 배치 할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무는 완수되어야만 했습니다. 영국 항공대의 지휘 계통은 더글라스 헤이그(Douglas Haig) 육군 원수로부터 시작해서, 영국 항공대의 지휘관인 휴 트렌차드 소장, 그리고 영국 항공대의 2 여단 지휘관인 톰 웹 보웬 준장, 그리고 45 비행대대의 지휘관인 윌리엄 리드 소령을 거쳐서 마침내 가장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는 코트니 대위와 그의 동료 조종사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 말은 코트니 대위가 품고있던 고뇌가 엄살이거나 그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저 솝위드 1½ 스트러터 복엽기를 사용하는 것 말고는 정말로 대안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어떤 상급 지휘관들도 이러한 반항을 아무 처벌없이 넘어가도록 방관할 수는 없었으며, 코트니 대위 또한 영국 항공대가 보병들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주어야 한다는 설교를 잠자코 듣고 있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웹 보웬 준장은 코트니 대위를 몇 일 후에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내가 준장에게 말한 행동으로 45 비행대대에서 떠난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과장된 이야기로 오랫동안 돌고 돌았다. 나는 이미 여단과 잦은 충돌을 빚었었고, 그 이유는 대부분 말도 안되는 우리 임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서 발생했다. 어느 날, 단 한 번도 위험한 비행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준장이 대대를 방문해서는, 우리가 우리 기체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는 내용의 부적절한 발언을 은연 중에 전파해댔다. 나는 여단의 지시에 대한 내 생각을 다소 거침없는 발언으로 답해줬고, 그 결과 며칠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나는 내가 받을 처벌이 이런 것이라면 딱히 의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영국 육군 항공대, 45 비행대대, 프랭크 코트니(Frank Courtney)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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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하트의 저서 Bloody April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피의 4월로 불리우던 기간에 영국 조종사들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일화가 아닐까 싶어서 번역해봤습니다.

이후로 코트니 대위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그대로 전역 당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45 비행대대의 지휘관이었던 윌리엄 리드 소령은 지휘관으로써 부하들을 직접 이끌어주며 고충을 나누고 싶어했지만, 전선 너머로의 비행을 금지하는 지휘부의 명령으로 인해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문에 부하들을 직접 지휘하지 못할 바에는 원래 소속이었던 기병 연대로 복귀하고 싶어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늘어나는 사상자들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다가 결국 본대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의역 및 오역이 심하기 때문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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